<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저, 나무옆의자, 2021. [전자책, 밀리의서재].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인생과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의 묘미가 느껴졌다. 체험해보지 못한 어떤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그 속으로 푹 빠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일어나는 갈등과 고민이 나 역시 비슷비슷한 상황들이 있다는 생각에 공감이 된다. 소설 내용에 나를 투영해 본다는 점이 한편으로 나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갈등이 깊어진 가족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모를 때 주인공인 독고 씨가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라고 말했다. 어쩜 이런 통찰이 일어났을까? 물론 주인공이 아직 자신도 시도해 보지 못한 상태이지만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말을 했다. 주인공이 편의점에 야간 알바로 근무하면서 동료나 손님들과 나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에 이기에 공감이 된다. 가족과 대화할 때 특히 자녀들과 대화가 잘 안 될 때 손님한테 하듯 대화한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은 더없이 소중히 간직하고 실천해야겠다.
이 책의 등장인물 중에 인경이란 작가가 있다. 아마도 저자의 자전적 내용 같기도 하다. 작가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절박한 심정을 나 역시 느낄 때가 많다. 지금도 마감을 몇 개월 넘긴 상태이다. 사실 지금 소설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떤 독서 모임에서 특별히 요청해 왔다. 청파동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동네도 소개해 주고 소설에 대해서도 토론을 주도해 주면 좋겠다는 부탁에 코로나도 거의 끝나가니 오프라인 모임에서 같이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승낙하고 이 책을 잡았다. 인경은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라고 한다. 나는 생각의 덩어리를 아직 덜 키운 것인가? 아니면 작가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
이 책으로 편의점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그동안 편의점을 단순히 편의품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공간으로 인식했었다. 그런데 편의점은 온갖 인간 군상들이 드나드는 공간이라고 한다. 편의점을 “인간들의 주유소”라고 표현한 부분이 참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편의점에서 수많은 사연이 등장할 줄 미처 몰랐다.
그리고 이 책의 구성이 좋았다. 장별로 주요 등장인물이 있고 그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연스럽게 그 장의 주인공이 된다. 그 장의 주인공 관점의 상황을 다른 장에 가면, 다른 장의 주인공 관점으로 동일 상황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전개하는 구조다.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인 독고 씨는 “나는”이라고 표현하며 1인칭 관점으로 앞에서 각기 따로 언급된 내용들을 이야기의 순서 중심으로 종합해서 풀어간다. 독자들이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해 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동안 종이책을 중심으로 독서를 했었다. 밀리의 서재의 구독자이지만 완독을 한 것은 처음이다. 일부는 아이패드의 스크린으로 나머지는 오디오북으로 읽고 들었다. 주로 내가 쓴 책을 모리터링하거나 업무용으로 급하게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했었는데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방법도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한 것 같다. 지방으로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오디오북으로 소설을 듣는 것은 참 좋은 생각이었다. 운전과 소설 경청, 딱 두 가지 이외에 잡념이 없고 잠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5시간 정도 운전하면서 소설의 3분의 2 정도 들은 것 같다. 독서를 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는 측면에서 이 책이 주는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p.72.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p.82. “무대는 편의점이에요. 온갖 인간 군상이 드나드는 편의점. 주인공은 편의점의 밤을 지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야간 알바고.”
p.84. 당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왔다면, 그것에 대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
p.123.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p.127. “가족들에게 평생 모질게 굴었네. 너무 후회가 돼. 이제 만나더라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질문에 대답하려 애썼다.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일까 무어라 말이 터지질 않았다. 내가 씁쓸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자 그는 괜한 말을 했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컵라면 그릇과 함께 몸을 돌렸다.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p.127.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p.134.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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