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조용한 사색의 길, 화성 용주사와 융건릉을 걷다

로컬 탐방

by 스토리그래퍼 구자룡 2025. 5. 16. 17:07

본문

[화성 용주사와 융건릉을 걷는 로컬 탐방]

 

 

천보루, ‘하늘의 보호’와 ‘백성의 제도’가 만나는 누각

2025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봄날. 다시 화성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용주사와 융건릉.

익숙한 장소이지만, 시간의 결은 늘 새롭게 다가온다.

 

 

“정돈된 아름다움 속의 아쉬움”

몇 해 전 용주사를 찾았을 때는, 그저 자연스러운 풍경이 좋았다.

스님이 들국화를 따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돈된 정원 같달까. 잔디와 대리석이 깔려 깔끔하긴 했지만, 그만큼 감성은 평평해졌다.

 

홍살문과 용주사
 

 

 

 

 

 

천보루, ‘하늘의 보호’와 ‘백성의 제도’가 만나는 누각

누각 '천보루(天保樓)'. 천보루의 아래층은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통로로 이용된다. 특이하게도 천보루의 누각이름이 안쪽에는 '홍제루(弘濟樓)'라고 쓰여있다. 같은 누각의 이름이 두 개인 것이다. 밖으로는 하늘[天]이 보호[保]하는 곳이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제도 한다 [弘濟]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나의 공간에 담긴 두 개의 철학이 인상 깊다. 권력자이면서 아버지를 기리고, 신하에게는 메시지를 남기는 정조의 마음이라고 할까.

 

정조의 효심과 정치 철학이 담긴 상징적 누각인 천보루와 세존 사리탑
 

 

 

팔작지붕의 천보루(天保樓)는 돌기둥의 강건함과 더불어 정조가 평소 즐기던 <시경> ‘소아’의 ‘천보(天保)’를 누각의 앞면 편액으로 사용해서 용주사의 사격을 사도세자의 왕궁으로 재탄생시켰다. ‘천보’ 시에는 현재의 임금이 선왕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리니 신령이 만수무강을 약속해 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는 한편, 신하들에게 그러한 자신을 따르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천보루 옆 동서 쪽으로 이어진 나유타료와 만수리실은 서로 대칭을 이루고 일반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안쪽에 정원(庭園)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주로 승방과 선방 등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는 한편 정조의 현륭원 원행(園幸)에 대비한 공간으로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599)

 

 

 

 

목어와 사리탑, 그리고 범종, 디테일에 멈춰 선 시선

목어 하나에도 생명이 느껴졌다. 잉어 모양의 목어는 의식을 위한 도구일 뿐인데도, 정교함이 살아 있었다.

전강 스님의 사리탑. 예전엔 그냥 지나쳤는데, 이번엔 오래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범종. 국보인데도 예전엔 모르고 지나쳤다. 알면 보인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의식용 도구이자 잉어가 살아있는 듯한 천보루(홍제루) 내 목어

 

 

천보루/홍제루 누각의 측면에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길이 2.44m의 목어가 있다. 잉어 모양으로 비늘, 지느러미 등이 살아있는 듯하다. 목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안온시키기 위한 것으로 조석예불과 각종 의식 때 두드리는 것이고 한다.

 

 

근현대 한국불교의 법맥을 이은 위대한 선승 전강영신대종사사리탑

 

전강영신대종사사리탑 상단
 

 

 

전강영신대종사 사리탑은 전강 영신 스님(1898~1975)의 사리탑이다. 한국 현대 불교의 대선사이며, 경허(75대) - 만공(76대) - 전강(77대)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통해 근현대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끈 위대한 선승이라고 한다. 용주사 중앙선원 조실스님으로 계셨던 인연으로 전강스님의 영원불멸한 법신사리를 받아 입적 30주기를 기념하여 부도탑을 조성했다고 한다. 2005년 점안의식을 가지며 제막되었다고 한다.

 

 

용주사 동종(국보)

 

 

천상에서 울리는 듯한 비천상 조각이 있는 용주사 동종
 

 

 

용주사 동종은 고려초기의 범종이고 큰 규모이며 신라시대의 범종 양식을 부분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한다. 종의 정상부에는 신라 종에서 볼 수 있는 용뉴와 용통이 있다. 범종 종신의 양쪽 옆에 비천상이 있다. 결가부좌한 삼존불상의 천의(天衣) 자락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 마치 천상세계에서 내려오는 듯한 형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마침 창살로 햇살이 들어와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예술 문외한인 나조차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목어가, 사리탑이, 비천상이 시간을 멈춰 세우는 순간이다.

 

 

절내 풍경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걸까?

템플스테이와 행사 준비로 분주한 절 안.

그 틈에 ‘화산카페’가 있다. 국화차 대신 커피, 밀크티, 스무디.

마치 절 안의 스타벅스 같달까.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나는 잠시 씁쓸했다.

 

화산카페 메뉴판

 

 

연못에 비친 전각, 연닢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는 잉어는 이런 변화를 알고 있을까?

 

대웅보전 옆 연못
 

 


다시 찾은 융건릉, 역사를 걷다

용주사에서 나와 융건릉으로 향한다.

사도세자와 정조. 그들의 시간 위로 잎이 무성한 봄.

역사를 걷는 길은 한없이 조용하다. 왕릉이 없었다면 그저 아름다운 숲길이었을지 모른다.

 

건릉 숲길
 

 

건릉(조선 22대 정조와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

 

 

비운의 왕과 아들의 시간을 품은 조용한 산책길(융릉과 건릉 사이 소나무숲길)

 

 

한 왕조의 슬픔이 깃든 이 공간이

지금은 시민의 쉼터가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뭉클하다.

 

 

유산은 ‘기억되는 방식’에 따라 살아 있다

화성의 이 두 장소는 문화유산이자 감성의 풍경이다.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억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정조의 철학, 절의 변화,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공간.

 

‘이뭣고?' 화두는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용화선원, 송담스님 법문중에서
 

 

 

이뭣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시 봄날이 오면,

나는 이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그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테니까.

 

 

용주사와 융건릉은 단지 문화유산이나 관광지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나 자신과 삶을 돌아보는 거울 같은 공간이다. 때론 지나치게 정돈되고 세속화된 풍경 속에서도, 그 본질을 기억하고 바라보려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댓글 영역